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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22일
    제주,기록 2022. 2. 23. 01:04

    이렇게나 중요한 날을 놓치고 말았다니.
    지금 깨달았다. 나는 2.22를 보냈구나.
    나쁘지 않게 보냈다. 는 마음이 들자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긴 시간 여행과 어쩔수 없는 사정으로 민폐를 끼치며 즐겁게 지내주던 선배 언니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가면 안되나 싶으면서도, 아이를 두고온 엄마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도 하고.
    언니는 제주에 오기싫은 딸과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서울에 두고,
    제주를 사랑하는 아들과 잠시 휴가차 내려왔는데,
    아뿔사, 서울에 남은 가족이 전원 확진이 되는 바람에..
    서울에 있는 아이도 걱정, 아직 미접종인 아들을 데리고 올라가기도 걱정.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 주 더 제주에 머물게 되었다.
    몸은 제주를 향해 매일매일 환호성을 지르는데, 마음은 한 없는 가시밭이었을것이다.

    덕분에 시끌벅적하고, 하하호호 잘 지냈던 나는.
    하염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먼 길 떠나는 그들을 위해.
    길거리 토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무려 함덕 빵명장이 만든 유기농 식빵에.
    계란과 양파 양배추를 잔뜩 썰어넣고, 휘휘 젛어 차르르 부쳐내고
    후라이 팬에 버터를 녹여 정성스레 미리 구워놓은 식빵을 올려, 길거리에서 파는 냥 찹찹 접어 접시에 놓는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설탕과 케첩듬뿍.
    안타깝게도 집에 설탕이 없어, 오랜시간 먹지 않았던
    커피집에서 받았던 일회용 설탕들을 모조리 찹찹 아낌없이 투척했다.
    원래도 집엔 설탕이 없어, 대략 그런 것들로 연명하는데,
    어따 쓸까 싶어 서울에서 올때 몇개 챙겨왔는데,
    이토록 달콤하게 제 노릇을 할줄이야..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키친 타월에 쥐어주니,
    아이가 엄지척으로 대답했다.
    이게 뭐라고.. 눈치 없이 더줄까를 외쳐보았다... -_-;

    여기서 보내던 어느 주말 너무나 멋지고, 내가 좋아했던 진정성 까페에 데려갔는데, 자다 깨 엄마와 다툰 모양이다.
    그날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쉬웠다, 반성하며 말했던 게 기억이나 서둘러 진정성 종점으로 데려간다.
    공항이랑도 가까우니, 아쉬운대로 15분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차의 맛도 너무 좋지만, 꼭 그 다기에, 꼭 그 차잎을 우려서 그 바다를 보면서 마셔야 하니까.


    2주가 진짜 길었지만, 지나보니, 미룬일은 결국 하지 못했잖아.
    서둘러 나가자! 모두가 동의 했다.

    우리가 또 언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다음에 또 해요 꼭!! 이라고 말해주니 고마웠지만,
    어른 둘은 마음으로 알고 있다.
    또 오면 너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또 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른 둘은.
    10년 전, 30년 전 각자 처음 제주에 왔던 기억을 조잘거렸다.

    못내 아쉬웠다.
    아이가 있는 집은 아이가 너무 이쁘면서도 커가는게 신기하고 너무 고마우면서도,
    더이상 사랑스러운 아가로 남아있지 않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나 역시도, 누구보다 진한 간접 경험이 있었기에, 그 마음이 백분 공감이 된다.
    중 2 남자 아이를 보면서도, 그런 마음이 생긴다는게 신기 했다.
    이러니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누구든, 아이들은 정말 보호받고, 사랑받는게 마땅하다.
    예외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아쉬운데, 가오상 성격상 애틋한 표현이 되지 않았다.
    언니와도 아이와도 또 이런 시간은 없을 것이다.
    또 주어진다면, 그건 그 때의 내가 잘 지내주길 바라며,
    빼빼로 과자만 남은 심정으로 공항으로 진입했다.
    내려서 로비에 있으면, 힘차게 손을 흔들고, 살짝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고. 아이와 주먹 악수라도 하고 싶었는데,
    애매한 시간에 도착한 탓에 기다림으로 발목을 잡기보단,
    출발층 게이트 앞에 세워 짐만 내려주고,
    쿨한 상사처럼 차문을 탁 닫고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에야 좋아진 날씨가 야속했다.
    정말이지, 꼭 한라산에 가서 별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있는 내내 구름이 낀 탓에 미루고 미루었더니, 결국 보여주질 못했다.
    어차피 밑져야 드라이븐데, 왜 갈 생각을 못했나 싶다.
    (바브양!!)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러 간단한 청소 도구와 세제를 샀다.
    어찌됐든, 말끔히 2층을 청소하고, 나름 장기간 쓴 나의 욕실도 청소하고,
    다시 Season 3 정도를 맞이하는 의식이랄까.
    그 보다 쓰레기를 정리해 버리고, 모처럼 좋은 날씨에,
    조금 걷고 뛰고 싶었다.


    날씨는 정말로 화창했고, 바람은 여전했다.
    뛰었다간 결과는 뻔하다.
    바람의 반대방향이면 다리가 부러질 것이고,
    바람을 타고 달린다면 등에서 불이나와 우주로 날아가 버릴만큼 강한 바람이다.
    적당히 걸었다. 저항하며 걷기도 쉽지 않았지만,
    제주의 바다란.
    정말이지, 이 곳이란.

    돌아갈 때가 다 되었는데, 이제서야 익숙해졌다.
    그 동안 왜 그렇게 다녔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낮은 풍경에 마음이 한 없이 편해진다.
    그 동안은 공감할 수 없었는데,
    나는 비로소 마음이 알게 모르게 늘 불편한 상태였나보다.
    그래서 여기만 오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늘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나보다. 싶었다.
    남은 기간은 김릴케로 잘 살다 가야지.
    그리고 또 오면 너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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