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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27일
    제주,기록 2022. 3. 2. 01:28

    남편과 느지막히 일어났다.
    일찍 눈은 떴지만, 다시 잠들었다.
    휴일의 특권이다.
    낮잠은 절대 잘 수 없지만, 늦잠은 얼마든지 잘 수 있다는게 나의 관용이다.
    1부예배는 포기했다.
    2부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나오니, 남편이 아침산책은 어디로 갔냐고 놀려댄다.
    시간정해 산책하는건 칸트야, 문학가는 하고 싶을 때 산책을 하는거야.
    라며 이어령 선생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별 관심없이 본인 일에만 몰두한다.
    오늘은 서귀포로 가보자!!!
    갑자기?
    - 응 여기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뭐 살거있어?
    - 어!
    .....

    <이거!! >


    집을 나서는데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한라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세상에 !!

    <빼꼼, 우뚝>

    심지어 가다보니 그렇게나 좋았었던 작년 여행 해안로가 한담 해안로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제주 동쪽의 바다와 서쪽의 바다가 이렇게 다른지 새삼 느끼게 되었고. ..




    주소를 보니 대정이네? 라고 남편이 묻는다.
    - 응! 서귀포시 대정읍!
    '다음부턴 그럼 대정에 간다고 해.'
    - 시른데? 담에 또 안 갈건데?
    어제 분명 좋은 말을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그래, 내가 그렇게 실천력이 좋았다면, 서울대갔지, 여기있냐. 라고 위안해본다.


    가는 곳마다 절경이고, 무엇보다 가는 내내 한라산이 계속 보인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한라산이 보였다.
    제주 집의 왼쪽은 한라산 뷰 , 오른쪽은 오션 뷰인데, 한 번을 제대로 한라산을 보지 못했다.
    날씨가 별로 안 좋은 시기에 왔으니 당연한 일인데.
    새삼 또 아쉬웠다.
    그리고, 오늘은 뭘 해도 다 잘 될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흔한 밭뷰지만, 실제로 저—어기 보이는 한라산은 진심 장엄했다. 그냥 밭이 아닌 느낌>

    목적지에 도착했다.
    <생활 도구점 >
    비정규적인 휴무와 먼 거리탓에 미루고 안맞다 겨우 왔는데,
    역시나 내 스타일. 내가 좋아했던 연희동 오자크레프트도 이 곳에 있다.

    우리 집에 있는 소품이 그대로 이 곳에 있다.
    우리집도 이랬으면... 싶지만, 그런 마음에 집은 자꾸 너저분해진다 -_-;
    사고 싶던게 몇개 있었지만, 딱 필요하고, 매일 쓸 것같고, 너무나 희귀템인 양털 신발 한 켤레만 딱 골라 나온다.


    온김에 맞은 편 커피숍도 용기내 들어가본다.
    사람도 많고, 이쁜 옷도 몇 개 있지만, 서둘러 나온다.

    < 시몬스가 떠오르는 건 기분탓이겠지 >



    돌아가는 길에 남편과 맛있는 저녁도 먹고, 오늘은 일몰도 그럴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날씨다.
    마음이 급해진다.

    맛있고 푸짐했던 현지인 맛집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따뜻한 솥밥을 먹고, 서둘러 해안로로 다시 돌아간다.
    반대편으로 들어서 집으로 향한다.
    몇 군데 좋아보이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자꾸만 지나쳐 마음으론 조용히 독을 품는다.
    그만 좀 차 좀 세워! 라고 한 마디 하고 싶지만, 일단은 참아보지만, 참는 만큼 마음은 불안하다.
    (‘너, 오늘 제대로 일몰 못보기만 해봐라.')
    역시나 엉뚱한 포인트에 차를 세워준다.
    '여기 알어?' (꾹꾹 눌러놓은 마음으로 이 악물고 물어본다.)
    - 아니 그냥 세워본건데?
    '아니 오빠, 아까 거기 바닷가에서 좀 보지, 왜 이런 외진곳까지왔어. 심지어 사람도 많잖아.'
    참았던 마음을 투덜투덜 쏟아낸다.
    이럴땐 키워둔 독을 한꺼번에 용처럼 뿜어져 내보내기보단, 적당한 타이밍에 기화되는게 훨씬 하루의 끝이 안전하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며 몇 발자국 내려갔는데... 세상에.


    어딘지 몰랐던 사진 속 풍경이 내 앞에 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마세요. 이어령 선생의 인터뷰 한 줄 이 떠올랐다.>

    정단층 절벽을 내려다보니 황홀했다.
    '저게 정단층이 맞는거지?' 왜 그렇게 남들 다 쉬워하는 지구과학을 싫어했을까.
    무식했던 어린시절이 후회가 된다.
    좀 더 부지런히 그 시간에 공부를 할걸.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웠을텐데.



    그 짧은 시간에도 해가 어느새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갈 태세다.
    지구가 저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거지.?
    나만 불멍하며, 바멍하며,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거지?
    울컥 슬퍼지고 불안했다.
    '잠깐이야. 지금 잠깐 놓지 않으면, 제대로 갈 수 없어. 이 시간은 나한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지나가는거야.
    받은 선물을 시한폭탄 분해하듯 두려워말고, 설레는 맘으로 리본을 풀어보자.'
    황홀한 시간에 가장 황홀한 마음을 가져본다.
    제주에 오면 좋아하는 일몰을 매일매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단 하루도 제대로 보지 못해 섭섭했던 마음이 오늘 이 몇 분에 다 풀린다.
    사진도 찍고, 잠깐 오롯이 바라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옮겨다니기도 하고, 타임랩스도 찍어보며.



    한 번으로 충분히 즐겼다.
    섭섭한 마음은 단 한번으로 괜찮아졌다.
    막 그렇게까지 일몰을 많이 좋아했던건 아닌가봐?
    그리고 여행중에 늘 무엇을 선택해도 100% 실패했던 남편의 슬픈 과거는 청산해 주었다.
    그래, 이제부턴 너의 상승기야. 나도 잘 부탁해.
    고맙다고 말해줄걸. 그냥 그렇게 또 촐랑촐랑 뛰어와서 오는내내 찍은 사진 리뷰만 하며,
    평소처럼 돌아왔다.
    따뜻하게 말하려던 사람은 김릴케는 아니었나보다.
    그래, 다시 돌아가면 반듯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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