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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3일
    제주,기록 2022. 4. 2. 03:25

    모처럼. 아니 제주에서 처음으로 활력을 찾은 날이다.
    일단 스케줄이 풀이다.
    10시에 예약해놓은 캔들 수업에 가고,
    12시반에 끝나면 양파와 점심을 먹고,
    무엇모다 으아아아아아 기다리고 있는  짐을 오늘은 꼭 싸야한다.
    모아놓은 쓰레기도 산더미인데,
    제주는 쓰레기 버리기가 녹록하지 않은 모양이다. 눈뜨기도 전부터 맘이 바빴다.

    너무 촉박하게 가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간만에 뉴스도 보고, 커피도 마시는데.
    이런. 벌써 이 아홉시가 넘었다고?
    머리도 감아야 하는데?
    ...

    늘 이런식이다.
    게으름뱅이의 삶이란.
    불이나케 머리를 감고, 말리는둥 마는둥. 물기만 털어내고,
    썬크림을 들고 나선다.


    밀랍캔들 수업은 꽤나 차분하고 조용히 진행되며, 마치 수양하는 기분도 들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게 가장 큰 소득이라 하였는데.
    이런 명랑만화처럼 발에 모터를 달고 아다다다 뛰어간다.
    뛰어가며 손은 썬크림을 바르고. 썬크림 다 발랐는데 한참 남았다.
    이 길이 이렇게 멀었나. 하..
    갠신히 늦지 않고, 마치 오 분전에 도착하려고 온 사람처럼 여유있게 걸어 들어간다.
    귀여운 비숑도 있었고, 선생님은 어느 새 수업준비를 정갈히 잘 해두셨다.




    최고급 지리산 밀랍으로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정성스레 만들어야 한다고.
    참지못하고, 내뱉어 버린다.
    '제주에서 지리산 밀랍이라구욥?헤헷.'
    실패다.
    지리산 밀랍이 제일 좋아 어쩔수 없다고 한다.
    하고 나면 심지어 벌꿀 냄새도 난다고 .
    한 마디 던진 농담에, 열심히 지리산 밀랍이 얼마나 우수한지 한 땀 한 땀 설명해주신다.
    나는 그냥 서울 촌년으로서 제주에서 특색이 있었다면, 슨상님의 사업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이스브래이킹을 했을 뿐인데, 민망함에 내가 얼음이 되어 버렸다.
    차분히 준비해 주신 애플민트 티를 마시고, 차분히 수업을 집중하기로 한다.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말아야짓.

    조곤조곤 차분히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던 재즈나 클래식 대신 흔한 발라드가 나오는데,
    모르는 노래지만 퍽 좋다.
    심지어 오늘은 날씨까지 좋아서, 햇빛이 비춰진 캔들샵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저 인테리어만으로 100% 채운 감각적인 공간에 들어온 햇살이 비현실적이다.


    제주에 내려온지 얼마 안된 선생님이 들려주는 제주와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얘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흥미로웠다.
    나와 같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느꼈던 제주,
    그리고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는 제주.
    나와 전혀 다른일을 하는 그의 일, 그에따른 라이프 스타일.
    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도전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일궈왔던 경험들.
    나보다 한참 어린 그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그 대화시간마저, 따뜻하고, 봄스러웠다.
    그녀의 봄이 따뜻하고, 지내는 내내 꽃길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손님도, 수강생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밀랍캔들은 역시나 아차하는 순간 망조가 들긴하지만,
    집중한 만큼 귀엽고, 퍽 그럴싸한 근사한 작품이 나온다.
    서울에 가면 귀여운 꼬꼬마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흙 만지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 좋아해줄지 의문이지만..
    만들어놓으니 퍽 귀엽고, 정말로 벌꿀냄새가 나서,
    이건 정말 아동용이다.
    힐링하고 싶은 어른에게도 넘 제격이다.
    아다다다 뛰어와 마음껏 차분해지고,

    하라는 대로 한 결과물, 욕심이 과했던 결과물

    끝나면 정갈히 포장해주신다. 이 샵과 선생님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드러났다.

    뿌듯했다. 단무지와 귀요미들😍



    수업이 끝나니 내내 즐겼던 차분한 마음은 어디가고
    양파와 만나기로한 집근처로 종종대며 걸어간다.
    참새도 배울판이다.
    종종종종 순식간에 집 앞이다.
    집 근처 지나다니기만 했던 식당 ' 회춘' 으로 들어간다.
    그냥 그런 캐주얼다이닝이라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들어가니 아늑하고, 구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인데,
    나는 일단 화장실이 깨끗해 일단 맘에 들었다.
    식사 역시 깔끔하고 푸짐하고, 맛있었다.
    한식을 좋아하는 나는 어딜가도 그닥 만족이 없는데,
    이렇게 가성비 좋고, 근사한 식당을 지척에 두고 마지막 날 경험했다니.
    참. 먹는데 인색한 인간이라고 마음으로 질책했다.


    연동에 있던 아라파파가 근처에 생겼다며, 양파가 안내한다.
    가는 길이 퍽 익숙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건 어쩔수 없다.
    여긴, 환상의 섬 제주니까.
    대략 편히 주차를 하고, 까페로 들어섰는데,
    너무, 평화로웠다.
    맛집, 까페, 식당, 분위기에 별 감흥없는 나와는 달리.
    현지인이지만, 나보다는 열심히 찾아다니고, 경험하는 양파 덕분에
    오늘도 모처럼 오랫만에 관광객같은 호사를 누리는 순간이다.
    옛날 사람이다.
    검색해 가봐야 별거없던 십 수년전 좋지 않았던 기억을 끌어안고,
    좋다는 곳, 유명한 곳,
    어딜가도 그닥 찾아가고 검색하는 법이 없으니.
    여행의 감흥이 어느순간부터 사라진 데 한 몫 단단히 했겠단 생각이 든다.
    못내 아쉽다.
    그리고 나의 여행이 끝나감을 나보다 더 아쉬워해주는 양파가 고마웠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있었을까.
    한 달이나 있었지만, 쌓인 얘기는 여전히 많고,
    각자 살아왔던 시간도 너무 길었고,
    간만에 옛날얘기도 너무 많이 쌓여있었다.
    가야할 시간이다.
    나오는 길이 못내 서로 아쉬웠다. 누가보면 지금 당장 공항에 가는 사람인줄.

    취향 비슷. 어쩔..

     

    저 바다에 해녀분들이 계셨는데, 처음 봤다 물질.
    현지인도 이런걸 보면 아름답다고 했던 풍경.



    돌아와 다시 현실속으로.
    제주는 클린하우스라는 마을 공동 쓰레기 장이 곳곳에 있다.
    한 마을에 곳곳에 있지만, 문만 열면 바로 숑하고
    쓰레기를 투척할 수 있는  서울과 비교하면,
    쓰레기를 집안에 모았다가
    대부분 차에 실어 한꺼번에 버린다고 했다.
    그래, 그 말을 들었어야했다.
    무슨 쓰레기 버리는데 가솔린을 쓰기까지 하나.
    가까우니 갖다 버리자 .. 시작한 쓰레기 버리기와 재활용버리기는
    7시부터 11시까지, 총 7번.
    결국 다 버리지 못하고, 남겨두고 온 민폐까지..
    이민가듯 싸갖고 온 짐을 다시 싸고,
    각종 쓰레기와 재활용, 음쓰를 버리고,
    지친 몸과 못내 아쉬운 맘으로 밤이 깊어 간다.
    내일 못 일어나면 어쩐다. 개학하기 전 날의 마음이다.
    내일 정말 가는거야?
    가야지. 또 오면 좋겠는데.'

    '또 올수 있을까' 라는 생각보단

    '그 땐 아름답게 지내다 갈 수 있을까.'

    라는 괜한 마음이 든다.

    참.. 걱정도 팔자. 

     

    무겁고 지친 몸과 맘이었지만, 아쉽고, 미련이 남은 마음으로 잠이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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